루시 모드 몽고메리 작품 한국어 번역 초판에 대하여 - 신지식 번역 앤의 청춘(애번리의 앤) 빨강머리앤 소설

  우리나라의 빨강머리 앤 관련 최초 번역은 신지식(申智植) 여사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지식 여사의 번역만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알려진 우리나라의 모든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작품의 초판과 관련 판본들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몇몇 게시물로 공개합니다. 지난 60년간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으려 합니다. 시초는 10년 전의 이 게시물부터 시작됩니다.

신지식 여사에게 듣는 한국 최초 빨강머리 앤의 번역에 대한 이야기 : http://aogg.egloos.com/9912598

   53년이니까. 아, 뭐 학생들도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아이도 많고, 거리에도 그렇고 다 그냥 좌절돼 있는 그런 상태고, 근데 그 앤이 <빨강머리 앤> 주인공 앤이 그런 그 어두운 그 쓸쓸한 속에서도 그렇게 그 명랑하게 자기 상상력과 뭐 이래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아, 이것 좀 이제 아이들한테 읽혀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신지식 여사>

  1963년에 빨강머리 앤 초판이 나왔고 이 이야기는 1953년에 신지식 여사가 이화여고에 교사로 부임한 첫해로 그후에 10년 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그 기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연구의 시작입니다.
  신지식 여사의 아동문학 집필은 1948년 이화여고 재학 시절에 어려서 일기에 썼던 것을 단편 작품으로 만들어 <하얀 길>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전국여자고등학교 학생 문학작품 현상공모에 응모하여 당선되면서 시작합니다. 문학의 꿈은 계속 이어져 전쟁 통에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나와 1953년 이화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문학을 지속하는 기반을 이룹니다. 선생님이 되고 난지 얼마 안 되어 꿈은 이루어져 1955년까지의 단편을 모은 <하얀길>을 1956년에 산호장(珊瑚莊) 출판사에서 냈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그 실물입니다.

  
하얀길 표지 ; 목차 일부 ; 서문 1 © 1956 산호장, 국립중앙도서관 nl.go.kr

  
서문 2 ; 서문 3 ; 신지식 후기 일부 © 1956 산호장, 국립중앙도서관 nl.go.kr

  <제3인간형>과 <북간도>로 한국문학을 이끈 안수길(1911~1977)이 서문을 썼고 그의 평가 그대로 신지식 여사는 겸손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시기였습니다. 곧이어 1958년에는 <감이 익을 무렵>을 성문각(成文閣)에서 출판하여 자신의 아동문학 대표작들을 정립하였습니다. 즉, 10년간의 공백이 아니라 창작자로써 자신의 문학을 정립하던 중요하고 바쁜 시기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읽혀줬으면 좋겠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외국의 책들도 해당하므로 번역도 그 시기에 시작했습니다. 처음 외서를 번역한 것은 <희랍신화(희랍神話)>로 1959년 신양사(新楊社)에서 교양신서 42번으로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번역·편집 저작물이기 때문에 번역이라기보다는 편자 또는 저자라 표기되는 게 맞습니다. 아동문학 창작자이면서 국어 교사였으니 빨강머리 앤의 번역을 위한 모든 준비가 이렇게 완성됩니다.

  
희랍신화 표지 © 1959 신양사, aladin.co.kr ; 본문 내용 일부 ; 판권 페이지 © 1959 신양사, 국립중앙도서관, nl.go.kr

  신양사의 <희랍신화>는 당시 메이저 출판사인 최영해(1914~1981) 사장의 정음사(正音社) 간행의 한국소년소녀전집 제4권으로 옮겨져 문교부의 제3회 우량아동도서 34종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최영해 사장의 부친이 한글로 독립운동을 하신 조선어학회의 최현배(1894~1970) 선생이십니다.
  이어서 1960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인 『앤의 청춘(애번리의 앤; 에이번리의 앤)』을 한글로 번역하여 앤 시리즈의 첫 도서로 출간했습니다. 대동당(大東堂) 출판사가 1959년에 노오벨·클럽(노벨·클럽, Noble Club)이라는 제목으로 10권(1권 오·헨리 경관과 찬송가 ~ 10권 단테 신곡)의 시리즈를 발간하여 인기를 끌었고 후속 출간 작업이 이어져 1960년에 2차로 10권을 더 추가하여 발간했습니다. 그것의 제12권에 신지식 여사 번역의 애번리의 앤(앤의 청춘)이 추가되면서 1960년 1월 20일에 출간된 것입니다. 아래에 실물 사진으로 직접 확인하세요.

  
애번리의 앤 표지 ; 2장 내용 일부 ; 판권 페이지 © 1960 대동당, 국립중앙도서관, nl.go.kr

  60년 전의 번역인데 지금 읽어도 외래어 표기가 변한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즉, 원전인 무라오카 하나코의 일본어 번역이 출중했기도 하지만 영어에 입각하지 않은 번역의 영향이 현재에도 남아 있으니 신지식 여사의 번역 능력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1985년과 1986년에 KBS에서 애니메이션을 방영할 때에 이 영향과 일본어 원판에 의해 지금도 다이애나를 흔히 다이아나라고 부르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1960년의 첫 도서가 이 정도이니 1963년의 빨강머리 앤 초판은 완성형일 것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여중·고생을 대상으로 시험 절차를 거쳤습니다. 신지식 여사가 자신의 창작물을 도서로 출판하기 전에 이화여고 교내지 <거울>을 통해 수시로 발표했듯이 1962년 <거울>에 연재한 것이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된 빨강머리 앤의 시작입니다. 1960년에 이미 <애번리의 앤>을 도서로 출간했으니 <빨강머리 앤>의 출판을 저울질 하고 있었음이 틀림이 없고, 번역 초고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을 것이 예상됩니다. 빨강머리 앤보다는 그리 인기가 없는 대동당 <앤의 청춘>의 책값이 400환이었습니다. 1960년 물가로 경기미 쌀 6kg의 가격입니다. 그러니까 <거울>이 배포되던 이화여중, 이화여고, 서울예고 학생들은 국내 최초 공개의 유료 콘텐츠를 신용카드 등록도 없이 무료로 구독 당한 겁니다. 이런 연유로 아래의 상황이 당연하게 됩니다.

   나중에 얘길 들었는데… 화요일 오후가 되면은 그것 배부를, '거울'을 아이들한테 주는 시간이, 점심시간에 줬는데, 점심 먹는 그 시간은 아이들이 조용해진다는 거예요. (여고생들이) 얼마나 떠들어요? 그런데 밥 먹으면서 떠들고 그러는데… 그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왜, 왜 조용해져요? 아, 그걸 읽느라고 그러는 거라고 그래서 놀라면서 기뻤어요. <신지식 여사>

  대동당 출판사는 1956년 이중남 사장이 설립한 서울 종로의 인쇄사 겸 출판사였습니다. 교양, 소설 부분에서 1950년대 말에 전성기였다가 1959년 6월 인쇄소의 모터 과열로 인한 화재로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은 후에 내리막 길을 걸었습니다. 대한인쇄협회는 유족에게 위문금을 전달하는 온정을 보였고, 사장이 구속 되는 와중에 진행된 시리즈가 노벨·클럽입니다. 재기의 노력 가운데에 <앤의 청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노력이 지면에 보이는 것은 아래의 1959년의 노벨·클럽 신문 광고입니다.

 
1959년 12월 26일자 동아일보 지면 광고 ; 1960년 2월 19일자 광고 중 앤의 청춘 부분 © 1959, 1960 동아일보, 네이버, dna.naver.com

  이런 노력에도 대동당에서 빨강머리 앤이 출간이 이어지지 못한 것은 화재 사고의 여파와 1960년의 4·19 혁명으로 대표되는 혼란한 사회와 이어진 1961년 5·16 군사정변에 기인합니다. 군사정권은 1961년 12월에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출판계를 통제했고 출판사들은 반공주의와 조국근대화라는 이념에 맞추어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 대동당은 이전부터 출판하고 있었던 학습 교재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78년 등록이 취소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역사는 문화를 통제한다는 것이 빨강머리 앤에서도 보입니다.
  이상으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 작품의 한국어 번역 초판은 신지식 여사가 번역한 1960년 대동당 출간의 『앤의 청춘(애번리의 앤)』임을 밝혔습니다. 애번리의 앤의 일본어 첫 번역은 무라오카 하나코 여사가 1954년에 <속 빨강머리 앤(続 赤毛のアン)>으로 처음 선보였고 앤의 청춘은 1955년 신초샤(新潮社)의 초판에서 썼던 제목이기 때문에 신지식 여사가 원전으로 참고한 도서는 신초샤의 1955년 판일 것입니다.

참고 도서
1. 『하얀길』, 신지식 저, 산호장, 1956
2. 『희랍신화』, 신지식 편, 신양사, 1959
3. 『앤의 청춘』,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저, 신지식 역, 대동당, 1960
4. 『신지식 동화선집』, 신지식 글, 정선혜 해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참고 논문 : 김성연(연세대학교 비교사회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2014, 『빨강머리 앤』번역과 수용의 문화 동력학 -공동체, 개인 그리고 젠더화된 문학적 상상력, 대중서사학회, 대중서사연구 Vol.20 No.2, 6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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