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5세기 말부터 본격적인 빨간 머리 수난 시대가 시작됩니다.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의 시작인 마녀사냥은 14세기에 구교에 의해 초기엔 이단 퇴치의 형식으로 시작되어 16~17세기의 극대기에 전 유럽에서 여성 박해의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초기의 유명한 사건으로는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한 날이라는 유래가 된 1307년 10월 13일 프랑스 왕 필립 4세가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해체시키고 몰살 시킨 사건이 있고, 마녀로는 1431년 잔다르크의 화형이 있습니다. 이후에 점점 여성의 비율이 높아져 남성과 비교하여 약 80% 가량의 여성이 마녀로 지목되어 희생되었습니다. 마녀로 판결을 받게 되면 양형은 오직 하나로 산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이었습니다.

<템플기사단의 화형 일러스트, 헤르만 스틸케 작 잔다르크의 죽음 (c) 1384 unknown artist en.wikipedia.org, 1843 Hermann Stilke arthermitage.org>
또한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로부터 루터교가 시작되고, 1534년에는 영국 헨리 8세의 수장령에 의해 시작된 성공회, 스위스의 츠빙글리에 이어 존 칼빈(장 칼뱅)이 일으킨 칼뱅주의에 의해 전 유럽이 종교개혁을 겪게 되며 많은 개신교 종파가 시작됩니다. 각 교단에서는 소수층 탄압의 수단으로 반대자를 이단으로 고발하여 처단했고 국가 내에서는 종교반란이 수시로 일어나며 국가 간에는 종교전쟁이 끊임 없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힘 없는 여성들이 사회, 정치, 문화, 젠더적 희생양이 되어 마녀사냥이 본격화 되는 것이고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극대화 되어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사회 약자들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대유행했던 흑사병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에 대표가 되는 빨간 머리가 많은 지역인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성공회와 가톨릭의 대립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칼뱅주의에 영향을 받은 존 녹스의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위시한 청교도가 생기게 되고 많은 박해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마녀사냥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신대륙으로 건너 간 청교도 사이에서도 마녀사냥이 있었으니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의 출처는 종교의 대립에 의한 정치 역사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당시에도 그것에 대항하는 실제 인물들이 있습니다. 전 게시물에 나열된 위대한 성취와 관련된 인물들처럼 근세에도 면면히 이어집니다. 정말 그러한지 정치 문화 인물로 살펴보겠습니다.

<빨간 머리 여성이 다수 표현된 1692년 메사추세츠 세일럼 마녀재판 회화, 빨간색이 모티브가 된 소설 주홍글씨 도서 커버 (c) 1855 T. H. Matteson en.wikipedia.org, 2005 Barnes & Noble amazon.com>
또한,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와 그 분가 및 튜더왕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주요 레퍼토리로 삼은만큼 그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영미문학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콘텐츠가 재상산 되고 있습니다. 그시대 인물들 대부분은 역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므로 그에 영향을 받은 빨강머리 앤에 소재로 나옵니다. 즉, 빨간 머리가 가지는 상징과 그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들이 연결됩니다.
역사 인물
5. 근세
ㄴ. 정치 문화
빨간 머리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485~1536)과 이혼하기 위해 국교를 만들고 총 여섯번 결혼한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는 어려서 빨간 머리였습니다. 자라서는 적갈색 머리로 바뀌었고 왕이 된 후에는 빨간 머리가 싫었던지 자신의 초상화를 의도적으로 갈색머리로 그리게 했습니다. 그의 두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 1507~1536)은 보통은 초상화에 의해 짙은 갈색머리로 알려졌지만 역시 적갈색의 빨간 머리였고 헨리 8세에 의해 간통 혐의로 참수되었습니다. 세번째 왕비 제인 시무어도 빨간 머리로서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했는지 산욕열로 죽었습니다. 네번째 왕비 클레브스의 앤(Anne of Cleves)은 머리색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헨리 8세의 취향으로 보아 빨간 머리일 확률이 매우 높지만 그런 이유인지 이혼만 당하고 목은 무사했습니다. 다섯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1520년경~1542년)는 앤 볼린의 외사촌으로 적갈색 머리이며 앤 볼린과 똑같이 간통 혐의로 참수되었습니다. 여섯번째 왕비 캐서린 파도 빨간 머리였지만 헨리 8세가 죽어서 화를 면했습니다. 헨리 8세가 그토록 많은 왕비를 죽이거나 쫒아낸 것은 아들을 못낳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선시대와 일맥상통합니다.

<아라곤의 캐서린, 헨리 8세, 앤 불린 초상화 (c) Hans Holbein the Younger images.google.com>

<클레브스의 앤(현대 일러스트),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파 초상화 (c) homepages.wmich.edu/~v5bowman, Hans Holbein the Younger images.google.com>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의 딸 영국 여왕 메리 1세(Mary I of England, 1516~1558)도 빨간 머리입니다. 신교도를 무자비하게 죽여서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블러디 메리(피투성이 메리, Bloody Mary)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러디 메리는 악명 높은 어떤 것에 대한 상징으로서 현대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블러디(Bloody)라는 단어가 영국 영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욕설(동정녀 마리아와 관계된 욕설로 1980년대 이후부터 강도가 약해져 현재는 어린이도 사용)이 된 것도 그 인물에 의해서입니다.
제임스 5세의 딸, 빨간 머리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메리 스튜어트, Mary, Queen of Scots, 1542~1587)는 생후 9개월부터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프랑스왕 프랑수아 2세와 결혼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567년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잉글랜드로 망명하고 18년간의 유배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1587년 참수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남편이 모두 죽는 불행 때문에 빨강머리 앤에서 나온 소재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항상 비운의 인물로 그려집니다.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Virgin Queen, 1533~1603)는 처녀 여왕으로 44년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였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며 제국의 기초를 다지면서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게 됩니다. 역시 빨간 머리로 유명하고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 주의 이름이 되었고 사람 이름으로도 쓰이게 되는데 빨간 머리이기 때문에 애칭으로 진저(Ginger)를 사용하게 되는 어원이 되는 실제 인물입니다. 여성이면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여왕이라서 현대에도 많은 콘텐츠가 재생산 되고 있지만 진저는 구시대에는 부정적인 이름이 아니었으나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부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도 국교를 정립하면서 마녀사냥에 일조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리터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c) 1558 François Clouet publicdomainclip-art.blogspot.com, 1546 William Scrots englishhistory.net>
Ω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영문학에서의 위치는 그의 이름 이전과 이후를 따지는 것처럼 영문학의 시작점입니다. 앤의 머리색이 어려서는 빨간색이었다가 자라서 적갈색이 되는 상황은 빨강머리 앤 소설도 영문학의 작품이므로 그 선상에서 셰익스피어가 그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셰익스피어라는 실제 인물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적기 때문에 현대에 많은 논란과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나쁜 인물은 대체로 모두 빨간 머리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어 빨간 머리만이 빨간 머리를 놀릴 수 있는 것을 실행한 두번째 위대한 인물로 생각됩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 작품에 수시로 투영되기 때문에 그 텍스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번리(Avonlea)라는 지명은 그의 고향인 스트래트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과 셰익스피어의 필명(Bard of Avon, Swan of Avon)의 유래가 된 에이번(Avon)에 문학적 시어인 초원이라는 뜻을 가진 리(lea)를 붙이면 만들어집니다. 실제 인물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그의 사극 희곡으로 유명한 헨리 4세(Henry IV of England, 1366~1413)의 이름이 헨리 볼링브로크(Henry Bolingbroke)인데 앤의 고향 노바스코샤 주의 볼링브로크(Bolingbroke)의 유래가 됨이 추측되고 헨리 4세 역시 실제 빨간 머리였습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곡의 뚜렷한 특징인 도시를 떠나 숲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 것과 낭만적인 모험과 로맨스, 해피엔딩, 쌍둥이가 등장인물로 자주 나오는 것 등의 모든 상황이 빨강머리 앤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쌍둥이에 대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아이들 중에 쌍둥이 남매로 쥬디스(Judith)와 햄닛(Hamnet)이 있었고 햄닛은 어려서 죽어서 셰익스피어가 그를 기리며 햄릿의 이름으로 썼습니다. 앤을 입양하는 가족이 왜 하필 노년의 남매냐라는 모티브에 약간의 증거입니다. 햄릿에는 미쳐서 죽는 오필리어가 나오는데 화관을 버드나무에 걸려다가 물에 빠져 둥둥 떠있다가 익사하여 죽게 되는 상황은 역시 빨강머리 앤의 중요 소재인 화관과 앤 시리즈 중 하나의 제목이 되었고 둥둥 떠있는 장면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백합공주 에피소드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리어왕에서는 효녀이고 슬프게 죽는 인물인 코델리아라는 공주가 나오는데 앤 셜리가 항상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는 적금발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는 빨강머리 앤 내용에 직접 인용했고 줄리엣은 매우 빈번히 빨간 머리로 그려집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고리(인육)대금업자 샤일록은 빨간 머리 유태인으로 대표적인 빨간 머리 악역 캐릭터입니다.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던 당시의 유태인 혐오는 빨강머리 앤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내용상 부정적인 인종주의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거나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쓰여졌으므로 현재에 부정적으로 보일 뿐 그 당시에는 적합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역사 희곡을 쓸 때 역사 관련 사실을 참고한 라파엘 홀린셰드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대기(Chronicles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Raphael Holinshed, 1577)의 제목은 모드 여사의 빨강머리 앤 시리즈의 번외 작품들의 제목인 애번리 이야기(Chronicles of Avonlea, L. M. Montgomery, 1912)와 그 속편에 영향을 끼쳤고 더 후에는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C. S. Lewis, 1950-56)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간접적인 것까지 합한다면 다른 영문학 작품들처럼 모든 시작이 셰익스피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문예부흥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영문학의 위대한 인물이며 빨강머리 앤 연구자의 기초적 출발점이 되는 빨간 머리 인물입니다. 아마도 당시의 셰익스피어는 영어의 미래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예로 아래 텍스트만큼 웹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일찍 쓰여진 예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로맨스 소설의 제목이 됩니다.
The webbe* of our life, is of a mingled yarne, good and ill together: < All's Well That Ends Well, William Shakespeare, 1623> *webbeearly middle English=web, weaver
우리 인생의 거미줄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얽혀 짜여지는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1623년 출판, 끝이 좋으면 다 좋아 4막 3장 중에서>
루시 모드 몽고메리 1931년 작품 제목 : 엉클어진 거미줄(사랑의 유산, A Tangled Web, L. M. Montgomery, 1931)
킴벌리 S. 영 박사의 인터넷 중독에 대한 책 제목 : 엉망진창의 인터넷(Tangled in the Web, Kimberly S. Young, 2001)
왕이 아니면서 영국사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도 빨간 머리였습니다. 청교도 혁명과 유럽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찰스 1세 왕을 처형하고 영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을 만들어 호국경으로 철권통치를 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년)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과학 연구의 업적 때문에 교회와의 대립으로 종교재판을 받고 지동설 철회를 강요 받았지만 빨간 머리 휘날리며 당당하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빨간 머리는 아니지만 동시대의 천문학자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재판을 받았던 것이 유명합니다.
스코틀랜드 고원의 무법자로 스코틀랜드의 로빈 후드라고 불린 로브 로이(Rob Roy MacGregor, 1671~1734)도 빨간 머리였습니다. 로이(Roy; Ruadh)라는 단어가 스코틀랜드 겔어로 빨간색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에는 스코틀랜드가 원산인 스카치 위스키를 베이스로 쓴 빨간색 칵테일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음악 분야에도 위대한 빨간 머리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1)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가 빨간 머리 휘날리며 콩나물을 잘 다루어서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알비노니는 실제로 작곡했는지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는 명곡으로 유명하고, 비발디는 사계, 협주곡, 오페라, 칸타타 등으로 유명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붉은색은 매우 긍정적인 중후, 온화의 의미로 대부분 악기들의 모든 색깔 그 자체입니다.

<올리버 크롬웰, 갈릴레오 갈릴레이 초상화, 영화 로브 로이 장면, 비발디 CG 일러스트 (c) 1600s Samuel Cooper, 1624 Ottavio Leoni en.wikipedia.org, 1995 AP photo, 2012 Alexander Street Press alexanderstreet.typepad.com>
다음 게시물에는 빨간 머리와 관련된 근세의 마녀사냥의 본질과 인종주의에 대해 더 알아보고 근대의 실제 빨간 머리 인물이 이어지겠습니다.

<템플기사단의 화형 일러스트, 헤르만 스틸케 작 잔다르크의 죽음 (c) 1384 unknown artist en.wikipedia.org, 1843 Hermann Stilke arthermitage.org>
또한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로부터 루터교가 시작되고, 1534년에는 영국 헨리 8세의 수장령에 의해 시작된 성공회, 스위스의 츠빙글리에 이어 존 칼빈(장 칼뱅)이 일으킨 칼뱅주의에 의해 전 유럽이 종교개혁을 겪게 되며 많은 개신교 종파가 시작됩니다. 각 교단에서는 소수층 탄압의 수단으로 반대자를 이단으로 고발하여 처단했고 국가 내에서는 종교반란이 수시로 일어나며 국가 간에는 종교전쟁이 끊임 없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힘 없는 여성들이 사회, 정치, 문화, 젠더적 희생양이 되어 마녀사냥이 본격화 되는 것이고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극대화 되어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사회 약자들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대유행했던 흑사병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에 대표가 되는 빨간 머리가 많은 지역인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성공회와 가톨릭의 대립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칼뱅주의에 영향을 받은 존 녹스의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위시한 청교도가 생기게 되고 많은 박해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마녀사냥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신대륙으로 건너 간 청교도 사이에서도 마녀사냥이 있었으니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의 출처는 종교의 대립에 의한 정치 역사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당시에도 그것에 대항하는 실제 인물들이 있습니다. 전 게시물에 나열된 위대한 성취와 관련된 인물들처럼 근세에도 면면히 이어집니다. 정말 그러한지 정치 문화 인물로 살펴보겠습니다.

<빨간 머리 여성이 다수 표현된 1692년 메사추세츠 세일럼 마녀재판 회화, 빨간색이 모티브가 된 소설 주홍글씨 도서 커버 (c) 1855 T. H. Matteson en.wikipedia.org, 2005 Barnes & Noble amazon.com>
또한,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와 그 분가 및 튜더왕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주요 레퍼토리로 삼은만큼 그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영미문학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콘텐츠가 재상산 되고 있습니다. 그시대 인물들 대부분은 역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므로 그에 영향을 받은 빨강머리 앤에 소재로 나옵니다. 즉, 빨간 머리가 가지는 상징과 그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들이 연결됩니다.
역사 인물
5. 근세
ㄴ. 정치 문화
빨간 머리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485~1536)과 이혼하기 위해 국교를 만들고 총 여섯번 결혼한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는 어려서 빨간 머리였습니다. 자라서는 적갈색 머리로 바뀌었고 왕이 된 후에는 빨간 머리가 싫었던지 자신의 초상화를 의도적으로 갈색머리로 그리게 했습니다. 그의 두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 1507~1536)은 보통은 초상화에 의해 짙은 갈색머리로 알려졌지만 역시 적갈색의 빨간 머리였고 헨리 8세에 의해 간통 혐의로 참수되었습니다. 세번째 왕비 제인 시무어도 빨간 머리로서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했는지 산욕열로 죽었습니다. 네번째 왕비 클레브스의 앤(Anne of Cleves)은 머리색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헨리 8세의 취향으로 보아 빨간 머리일 확률이 매우 높지만 그런 이유인지 이혼만 당하고 목은 무사했습니다. 다섯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1520년경~1542년)는 앤 볼린의 외사촌으로 적갈색 머리이며 앤 볼린과 똑같이 간통 혐의로 참수되었습니다. 여섯번째 왕비 캐서린 파도 빨간 머리였지만 헨리 8세가 죽어서 화를 면했습니다. 헨리 8세가 그토록 많은 왕비를 죽이거나 쫒아낸 것은 아들을 못낳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선시대와 일맥상통합니다.

<아라곤의 캐서린, 헨리 8세, 앤 불린 초상화 (c) Hans Holbein the Younger images.google.com>

<클레브스의 앤(현대 일러스트),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파 초상화 (c) homepages.wmich.edu/~v5bowman, Hans Holbein the Younger images.google.com>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의 딸 영국 여왕 메리 1세(Mary I of England, 1516~1558)도 빨간 머리입니다. 신교도를 무자비하게 죽여서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블러디 메리(피투성이 메리, Bloody Mary)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러디 메리는 악명 높은 어떤 것에 대한 상징으로서 현대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블러디(Bloody)라는 단어가 영국 영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욕설(동정녀 마리아와 관계된 욕설로 1980년대 이후부터 강도가 약해져 현재는 어린이도 사용)이 된 것도 그 인물에 의해서입니다.
제임스 5세의 딸, 빨간 머리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메리 스튜어트, Mary, Queen of Scots, 1542~1587)는 생후 9개월부터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프랑스왕 프랑수아 2세와 결혼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567년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잉글랜드로 망명하고 18년간의 유배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1587년 참수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남편이 모두 죽는 불행 때문에 빨강머리 앤에서 나온 소재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항상 비운의 인물로 그려집니다.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Virgin Queen, 1533~1603)는 처녀 여왕으로 44년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였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며 제국의 기초를 다지면서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게 됩니다. 역시 빨간 머리로 유명하고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 주의 이름이 되었고 사람 이름으로도 쓰이게 되는데 빨간 머리이기 때문에 애칭으로 진저(Ginger)를 사용하게 되는 어원이 되는 실제 인물입니다. 여성이면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여왕이라서 현대에도 많은 콘텐츠가 재생산 되고 있지만 진저는 구시대에는 부정적인 이름이 아니었으나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부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도 국교를 정립하면서 마녀사냥에 일조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리터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c) 1558 François Clouet publicdomainclip-art.blogspot.com, 1546 William Scrots englishhistory.net>
Ω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영문학에서의 위치는 그의 이름 이전과 이후를 따지는 것처럼 영문학의 시작점입니다. 앤의 머리색이 어려서는 빨간색이었다가 자라서 적갈색이 되는 상황은 빨강머리 앤 소설도 영문학의 작품이므로 그 선상에서 셰익스피어가 그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셰익스피어라는 실제 인물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적기 때문에 현대에 많은 논란과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나쁜 인물은 대체로 모두 빨간 머리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어 빨간 머리만이 빨간 머리를 놀릴 수 있는 것을 실행한 두번째 위대한 인물로 생각됩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 작품에 수시로 투영되기 때문에 그 텍스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번리(Avonlea)라는 지명은 그의 고향인 스트래트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과 셰익스피어의 필명(Bard of Avon, Swan of Avon)의 유래가 된 에이번(Avon)에 문학적 시어인 초원이라는 뜻을 가진 리(lea)를 붙이면 만들어집니다. 실제 인물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그의 사극 희곡으로 유명한 헨리 4세(Henry IV of England, 1366~1413)의 이름이 헨리 볼링브로크(Henry Bolingbroke)인데 앤의 고향 노바스코샤 주의 볼링브로크(Bolingbroke)의 유래가 됨이 추측되고 헨리 4세 역시 실제 빨간 머리였습니다.또한,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곡의 뚜렷한 특징인 도시를 떠나 숲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 것과 낭만적인 모험과 로맨스, 해피엔딩, 쌍둥이가 등장인물로 자주 나오는 것 등의 모든 상황이 빨강머리 앤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쌍둥이에 대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아이들 중에 쌍둥이 남매로 쥬디스(Judith)와 햄닛(Hamnet)이 있었고 햄닛은 어려서 죽어서 셰익스피어가 그를 기리며 햄릿의 이름으로 썼습니다. 앤을 입양하는 가족이 왜 하필 노년의 남매냐라는 모티브에 약간의 증거입니다. 햄릿에는 미쳐서 죽는 오필리어가 나오는데 화관을 버드나무에 걸려다가 물에 빠져 둥둥 떠있다가 익사하여 죽게 되는 상황은 역시 빨강머리 앤의 중요 소재인 화관과 앤 시리즈 중 하나의 제목이 되었고 둥둥 떠있는 장면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백합공주 에피소드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리어왕에서는 효녀이고 슬프게 죽는 인물인 코델리아라는 공주가 나오는데 앤 셜리가 항상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는 적금발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는 빨강머리 앤 내용에 직접 인용했고 줄리엣은 매우 빈번히 빨간 머리로 그려집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고리(인육)대금업자 샤일록은 빨간 머리 유태인으로 대표적인 빨간 머리 악역 캐릭터입니다.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던 당시의 유태인 혐오는 빨강머리 앤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내용상 부정적인 인종주의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거나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쓰여졌으므로 현재에 부정적으로 보일 뿐 그 당시에는 적합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역사 희곡을 쓸 때 역사 관련 사실을 참고한 라파엘 홀린셰드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대기(Chronicles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Raphael Holinshed, 1577)의 제목은 모드 여사의 빨강머리 앤 시리즈의 번외 작품들의 제목인 애번리 이야기(Chronicles of Avonlea, L. M. Montgomery, 1912)와 그 속편에 영향을 끼쳤고 더 후에는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C. S. Lewis, 1950-56)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간접적인 것까지 합한다면 다른 영문학 작품들처럼 모든 시작이 셰익스피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문예부흥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영문학의 위대한 인물이며 빨강머리 앤 연구자의 기초적 출발점이 되는 빨간 머리 인물입니다. 아마도 당시의 셰익스피어는 영어의 미래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예로 아래 텍스트만큼 웹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일찍 쓰여진 예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로맨스 소설의 제목이 됩니다.
The webbe* of our life, is of a mingled yarne, good and ill together: < All's Well That Ends Well, William Shakespeare, 1623> *webbeearly middle English=web, weaver우리 인생의 거미줄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얽혀 짜여지는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1623년 출판, 끝이 좋으면 다 좋아 4막 3장 중에서>
루시 모드 몽고메리 1931년 작품 제목 : 엉클어진 거미줄(사랑의 유산, A Tangled Web, L. M. Montgomery, 1931)
킴벌리 S. 영 박사의 인터넷 중독에 대한 책 제목 : 엉망진창의 인터넷(Tangled in the Web, Kimberly S. Young, 2001)

왕이 아니면서 영국사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도 빨간 머리였습니다. 청교도 혁명과 유럽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찰스 1세 왕을 처형하고 영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을 만들어 호국경으로 철권통치를 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년)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과학 연구의 업적 때문에 교회와의 대립으로 종교재판을 받고 지동설 철회를 강요 받았지만 빨간 머리 휘날리며 당당하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빨간 머리는 아니지만 동시대의 천문학자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재판을 받았던 것이 유명합니다.
스코틀랜드 고원의 무법자로 스코틀랜드의 로빈 후드라고 불린 로브 로이(Rob Roy MacGregor, 1671~1734)도 빨간 머리였습니다. 로이(Roy; Ruadh)라는 단어가 스코틀랜드 겔어로 빨간색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에는 스코틀랜드가 원산인 스카치 위스키를 베이스로 쓴 빨간색 칵테일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음악 분야에도 위대한 빨간 머리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1)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가 빨간 머리 휘날리며 콩나물을 잘 다루어서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알비노니는 실제로 작곡했는지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는 명곡으로 유명하고, 비발디는 사계, 협주곡, 오페라, 칸타타 등으로 유명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붉은색은 매우 긍정적인 중후, 온화의 의미로 대부분 악기들의 모든 색깔 그 자체입니다.

<올리버 크롬웰, 갈릴레오 갈릴레이 초상화, 영화 로브 로이 장면, 비발디 CG 일러스트 (c) 1600s Samuel Cooper, 1624 Ottavio Leoni en.wikipedia.org, 1995 AP photo, 2012 Alexander Street Press alexanderstreet.typepad.com>
다음 게시물에는 빨간 머리와 관련된 근세의 마녀사냥의 본질과 인종주의에 대해 더 알아보고 근대의 실제 빨간 머리 인물이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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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한국에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문화가 최근 생겼죠.
바로 혈액형이죠.
가장 많이 알려진게 'A형 남자는 소심하다.', 'B형 남자는 다혈질이다.', 'AB형 남자는 싸이코기질이 있다.'
'O형 남자는 바람둥이다.' 등등...
10대, 20대, 30대에 두루두루 퍼져있죠.
전 개인적으로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사람의 성격은 유전, 자라온 환경,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형성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텐데,
'혈액형별 성격'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사람을 '분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참 기분나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