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수업 시대와 교사 생활(캐나다의 원룸스쿨 3) L.M.몽고메리 연구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는 19세기 캐나다 공립학교 공교육의 실제 체험자였고 당시 원룸 스쿨의 교사였습니다. 원룸 스쿨의 사례로 빨강머리 앤으로 유명한 작가의 삶 자체가 실례가 되겠고 앤 시리즈와 다른 시리즈 등의 소설 작품을 통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서 실례로 모드 여사의 수업 시대와 교사 생활을 살펴봄으로서 19세기 중반 이후의 캐나다의 원룸 스쿨과 교육을 조명합니다.

   1874년 11월 30일에 태어난 모드 여사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 본토로 가버려서 캐번디시의 우체국장이었던 외가 할아버지 집(맥닐가)에 살면서 유아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다른 주와는 다르게 유아교육이 없어서 초등학교를 일찍 입학하는 경향이 있었고 상원의원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력으로 6살이 된 1880년 캐번디시 학교에 입학하면서 모드의 교육 과정이 시작됩니다. 영국이 1870년대에 공립학교를 법제화하여 캐나다도 그대로 따라서 마을마다 수업료가 없는 공립학교인 원룸 스쿨이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고아 아닌 고아로서의 심적인 부담감은 문학에 대한 열정의 토대가 되고, 열심히 공부하며 고양이들(캣킨, 푸시-윌로우)과 여러가지 공상과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캐번디시 원룸 스쿨과 프린스 오브 웨일즈 칼리지 (c) 1889 Guelph University images.ourontario.ca, 1900 edu.pe.ca>

   1887년 아버지가 사스캐치원 주의 프린스 앨버트에서 재혼하고 모드를 불러서 16세인 1890년 여름에 이주하여 1년간 그곳의 고등학교 과정을 다니면서 새엄마의 아기들을 돌보며 주일학교 교사를 했고 새엄마와의 관계 악화와 향수병, 끈적한 눈길을 보내는 교사 때문에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돌아왔습니다. 그 시기부터 문학적인 성취가 시작되어 모드의 작품이 여러 신문에 발표되었습니다. 캐번디시에서 가까운 파크 코너의 친척인 애니와 존 캠벨 가에 살며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시험 준비를 위해 캐번디시 학교에 다시 나가 상급과정(특별반 유료)을 공부하여 1893년 여름 샬럿타운의 교원학교인 프린스 오브 웨일즈 칼리지(Prince of Wales College, 1836년 설립 후 1969년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대학교로 통합)에 합격한 264명의 학생 중에 5등으로 합격했습니다. 1년 속성과정을 수강해서 18과목을 1년만에 패스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다섯 과목에서 1등, 세 과목에서 2등을 기록하며 졸업했습니다. 문학적인 발전도 계속되어 학교에서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여 돈을 버는 학생으로 알려졌습니다. 졸업식 후 3일만에 치르게 된 교사 자격 시험에서는 120명 응시에 총 49명이 합격했는데 그 가운데 6위의 성적으로 2급 교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벨몬트 학교 모드 여사와 학생들과 현재의 로어 베데큐 학교 (c) 1896, 2010 aogg.egloos.com>

   자격증 취득 후 곧바로 섬의 북서부에 위치한 원룸 스쿨인 비더포드(Bideford)에 교사로 채용되어 1894년 여름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8명의 학생을 지도했고 1895년 초에는 1급 교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1년간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자질을 심각히 고민하게 되었고 문학에 대하여 더욱 박차를 가하고 여러 글이 잡지나 신문사에 채택되기도 하고 거절되기도 했습니다. 학기를 마친 후 할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자신의 번 돈과 할아버지가 반을 부담하여 1895년 노바 스코샤 주의 핼리팩스에 있는 달하우지 대학교(Dalhousie University)에 영문학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입학합니다. 학사학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문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가지 질병과 싸우며 두가지의 영문학 과정 외에도 독일어, 불어, 라틴어, 로마사를 수강했습니다. 대학에서 기고한 여러 글 중에 미국 어린이 출판사에서 자신의 단편 <Golden Days>가 채택되어 처음으로 5달러를 고료를 받고 이후 다른 글들로 받았지만 대학 과정을 계속할만한 돈을 벌지는 못했고, 책이나 오르간 레슨비로 충당하며 영문학 특별 과정을 마치고 교사로 다시 일하기 위해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섬의 서북부의 작은 마을 벨몬트(Belmont)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자신의 친척 에드윈 심슨(Edwin Simpson)이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려고 교사를 그만두고 벨몬트 학교를 추천해 주어 1896년 가을부터 1년간 교사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에드윈 심슨과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어울리는 레벨이라는 생각으로 청혼을 허락하여 약혼자가 되었고 1897년 섬 남서부의 로어 베데큐(Lower Bedeque)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26세 농장주 허먼 리어드(Herman Leard)와 불같은 사랑에 빠졌으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허먼과 1898년 3월 학교를 사직하면서 관계를 끝내고 심슨과도 파혼하고 맥닐 가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문학 작업은 계속 이어져 그 시기에 19편의 단편과 14편의 시가 지면으로 발표되어 문학의 비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서 모드 여사의 교육에 관련된 모든 경력을 마치게 됩니다.

  
<14세 때의 캐번디시 학교 은사 해티 고든 스미스, 빨강머리 앤의 스테이스 선생의 영감이 된 캐번디시 학교 선생 노라 레퍼지 캠벨, 1887년 완공 달하우지 대학 포레스트 빌딩 (c) 1895 Guelph University images.ourontario.ca, 1900s Ed Campbell Remembering Lucy Maud Montgomery, 1900s Dalhousie University library.dal.ca>

   1900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01년 핼리팩스의 신문사에 취업해서 칼럼을 맡는 등 도시 생활을 해봤지만 섬에 대한 향수는 그대로 이어져 1902년 6월 섬으로 다시 돌아와서 할머니의 우체국 일을 도우며 작가로서의 도전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캐번디시 교회에 미래의 남편이 될 노총각 이완 맥도널드(Ewan Macdonald) 목사가 부임하고, 캐번디시의 학교에 부임한 매우 현대적인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던 여선생인 노라 레퍼지 캠벨(Nora Lefurgey Campbell)과 교류하고, 친척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프레데리카 캠벨(Frederica Campbell)과 초록 지붕집(Green Gables)의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1905년(1904년) 자신이 오래전에 남긴 메모(마을에 아이가 없는 노부부가 농장 일을 도울 남자 아이를 고아원에 요청했는데 실수로 여자 아이가 왔다.)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빨강머리 앤을 쓰게 되었습니다. 빨강머리 앤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 보스턴의 출판사에서 1908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작가가 되기까지 모드 여사의 삶에 투영된 원룸 스쿨과 자신이 어렸을 때 배웠던 모든 것과 교사가 되어 겪었던 모든 것과 교육에 대한 철학이 모드 여사의 작품 모두에 들어 있게 되었습니다.


<애번리 빌리지의 애번리 학교 체험학습, 일본의 애번리 학교 (c) 2010 strongstuff flickr.com, 2007 Hikaru & P homepage2.nifty.com/Chu-Pi>

   캐나다의 공립교육의 시초인 원룸 스쿨과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까지 모드 여사는 그 학교의 학생이었고 교사였으며 그것의 체험은 빨강머리 앤 등의 작품을 통해 매우 낭만적인 취향으로 유명한 캐릭터를 통해 자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캐나다의 그 교육 관련 문화는 후대 작가와 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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