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캐나다의 원룸 스쿨 풍경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것과 같았고 미국과도 비슷하여 초원의 집 드라마 등의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교실 풍경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교탁이 있고 칠판이 있고 분필이 있고 난로가 있고 책상과 의자가 있고 학생이 있고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때의 캐나다의 교실에서도 똑같이 수시로 쪽지 시험을 쳤고 숙제가 있었으며 즐거운 점심시간이 있었고 휴식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와 지금과 다른 점은 수업 방식, 교과목, 여러 발명품에 의해 바뀌어진 편리한 비품과 학용품이 있을 뿐입니다. 19세기 캐나다 교실에 대한 것은 빨강머리 앤이 역시 사료(史料)가 되며 그것을 위주로 원룸 스쿨의 교실과 수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원룸스쿨과 교실 (c) 2006 MacClure, 2009 chrismphillips flickr.com>
캐나다의 새학년은 서양의 보통의 경우처럼 가을에 학기를 시작합니다. 농번기가 지난 가을이 지나야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농장 일과 집안 일에서 벗어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런 개척시대의 이유와 유럽 문화 때문에 현재도 겨울 방학이 2~3주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원인이 되었습니다. 카운티(군)의 형편에 따라 마을의 운영위원들의 결정으로 수업일수, 교사계약, 학과진행 방법이 정해졌고, 수업일수는 겨울 시즌에 8주~12주에 불과한 곳도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공립학교(Common School1)의 법제화가 정착되어 보통 가을부터 봄까지 수업을 진행했고 수업일수 규정은 없어서 교사의 판단과 학습과정, 시험으로 학생이 그 학년에 맞는 교과서의 내용을 대체로 이해하면 다음 학년으로 올려주었고 각 학년에 맞는 학습 능력이 안되면 될 때까지 유급을 시켰습니다. 집안 형편에 따라 학교에 오는 기간이 짧은 아이는 교사가 집에서 공부할 것을 가르쳐서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도 학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대체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신문이나 문학서적을 읽고 작문을 하거나 농장의 자산을 관리할 정도의 계산 능력이 생겼습니다. 당시 독본에 여러 고전 문학 작품이 들어있는 것과 산수 교과서에 돈을 연관지은 계산법을 주로 공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교실과 교사의 비품은 수업시간을 알리는 핸드벨, 지시봉(때리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됨), 책상과 의자(보통 뚜껑이 위로 열리는 책상, 의자, 서랍 일체형), 칠판, 천지우개, 분필, 교탁, 사전, 국기(당시는 영국기), 난로, 입구의 여남구분 옷걸이(학생용 라커의 유래), 차트, 지도 등이 있었고 학생 준비물로는 펜맨쉽을 연습할 때는 펜, 잉크, 카피북(빅토리아 시대 펜맨쉽)을 가지고 다녔고 일반적으로 석판, 석필, 천, 교과서, 도시락 등이 필수였고 여학생은 향수병(병의 물을 천이나 스펀지에 묻혀 석판을 닦으면 깨끗하게 지워짐)과 손수건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에이프런(앞치마, Apron 또는 Pinafore)를 필수적으로 입고 다녔고 대체로 신발을 안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캐나다와 영국의 학교 비품에서 다른 것이 있다면 주판(Abacus)인데 영국 학교에서는 산수 시간에 이용되던 기자재인데 비해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당구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석판은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검은색 점판암(슬레이트)에 나무 테두리를 씌운 것이고 석필은 납석(곱돌)을 원통형으로 잘라서 만든 필기구였습니다. 여유가 있는 아이들은 분필(탄산석회)을 쓰기도 했는데 잘 부러져서 보통 선생님만 사용했습니다. 석필은 재질 때문에 조용히 쓰지 않으면 기분 나쁜 소음이 나서 20세기에 이르러 종이와 연필의 가격이 싸지면서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뚜껑이 위로 열리는 일체형 책상과 의자, 빅토리아 시대 에이프런과 주판 (c) Islington Education Library Service objectlessons.org, Shutterstock Images LLC shutterstock.com>


<잉크, 펜, 카피북과 석판, 석필 (c) Islington Education Library Service objectlessons.org>
수업은 보통 오전 9시(영국 빅토리아 시대 보통 등교 시간과 동일)까지 등교해서 주기도문(Lord's Prayer)을 외우고 국가(당시는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를 부른 후에 선생님에게 각자 지도를 받으며 각자의 학년에 맞는 교과서를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 밖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5시 정도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성적표(1905년 경부터 캐나다 공립학교에 도입됨)는 없었지만 연말이나 학년말이 되면 발표회를 통해서 전제적인 수업 능력을 확인했고 진로에 대한 상담으로 학부모에게 할 말이 있으면 교사가 부모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말을 안듣는 학생은 꾸지람을 듣고 구석에 서 있거나, 정해진 의자에 앉아 있거나 바보라고 쓰여진 모자(Dunce's Cap, 특히 영국)를 쓰고 서 있기부터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심한 벌로는 여학생을 남자아이와 함께 앉게 하기(빨강머리 앤), 의자 위에 오랜 시간 서 있게 하기(제인 에어), 매맞기(작은 아씨들, 톰소여의 모험) 등이 있었고 때리는 도구는 막대기부터 심지어 채찍(초원의 집)에까지 이릅니다.

<19세기 우윳병과 도시락통 (c) Wikipedia en.wikipedia.org, 2008 Denise J. flickr.com>
20세기 초부터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지역의 부유한 공장주나 마을 공동 부담으로 우유를 학생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후에 북미도 법제화 하여 지급하기 시작한 것처럼 어린이 발육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원룸 스쿨에서는 집에서 우유를 아이들이 스스로 가져와서 마셨습니다. 빨강머리 앤에 따르면 학교 옆 시냇물에 담가 두는데 자기 자리에 남이 우윳병을 놓으면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점심은 기숙학교는 학교 식당에서 직접 제공했고 집이 가까운 아이들을 제외한 보통 공립학교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공립학교가 빅토리아 시대부터 생겨서 그때부터 도시락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선진국들이 각국의 형편에 맞는 시기에 급식 프로그램(우유급식, 점심급식, 아침급식, 간식급식, 무료급식, 방학급식 등)을 시작한 것과 달리 캐나다는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유급식이나 간식급식과 일부 지역의 아침급식 외에는 그때 그대로 도시락을 싸와서 학교에서 먹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학교 급식에 의한 비만 문제는 덜합니다. 도시락 통은 보통 처음에는 등나무 바구니를 사용했고 19세기 말엽에는 북미의 전형적인 금속 재질 통을 사용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등나무 바구니로 그려졌는데 19세기 일본에서 대나무 바구니 도시락 통이 일반적이서 그렇게 표현되었지만 실제로는 초원의 집 드라마에 나오는 도시락 통이 북미의 전형적인 형태였고 빵, 과일, 계란, 샌드위치, 파이, 쿠키 등을 손수건에 싸서 통에 넣고 다녔습니다. 여자 아이는 그러한 점심을 대체적으로 먹었지만, 남자 아이들은 부유한 아이들 외에는 도시락 통이 거의 없고 그저 신문지에 싸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앤의 도시락과 향수병 (c) 1979 Nippon Animation aogg.egloos.com>
학업 과정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외에 대개의 경우 초등학교만 마치고 직업이 될 일을 배웠고 그에 따라 결혼도 매우 일찍 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11살의 나이로 인쇄소 견습공이 되었는데 후에 미국 문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마크 트웨인의 최종 학력이 옥스퍼드대학교 명예박사(1907)인 것을 생각하면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교육이 그대로 이어진 캐나다의 원룸 스쿨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교육 형태는 아니지만2 유럽의 교육이 캐나다와 미국과 같은 개척시대 환경에서 적용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캐나다는 미국의 영향으로 'Common School', 'Public School' 등은 모두 공립학교(초, 중, 고)를 뜻하고, 영국의 'Public School'은 이튼 등의 명문 사립중등학교를 뜻합니다.
2. 우리나라에는 이미 사설 초등교육 기관인 서당이 고려시대(경관, 서사)부터 존재했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학교 격이자 원룸 스쿨 격이었습니다. 또한, 고구려 시대의 경당도 같은 성격이어서 삼국시대부터 교육에 대해 기본적인 체제가 있었기에 서양의 교육체제와는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

<원룸스쿨과 교실 (c) 2006 MacClure, 2009 chrismphillips flickr.com>
캐나다의 새학년은 서양의 보통의 경우처럼 가을에 학기를 시작합니다. 농번기가 지난 가을이 지나야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농장 일과 집안 일에서 벗어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런 개척시대의 이유와 유럽 문화 때문에 현재도 겨울 방학이 2~3주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원인이 되었습니다. 카운티(군)의 형편에 따라 마을의 운영위원들의 결정으로 수업일수, 교사계약, 학과진행 방법이 정해졌고, 수업일수는 겨울 시즌에 8주~12주에 불과한 곳도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공립학교(Common School1)의 법제화가 정착되어 보통 가을부터 봄까지 수업을 진행했고 수업일수 규정은 없어서 교사의 판단과 학습과정, 시험으로 학생이 그 학년에 맞는 교과서의 내용을 대체로 이해하면 다음 학년으로 올려주었고 각 학년에 맞는 학습 능력이 안되면 될 때까지 유급을 시켰습니다. 집안 형편에 따라 학교에 오는 기간이 짧은 아이는 교사가 집에서 공부할 것을 가르쳐서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도 학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대체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신문이나 문학서적을 읽고 작문을 하거나 농장의 자산을 관리할 정도의 계산 능력이 생겼습니다. 당시 독본에 여러 고전 문학 작품이 들어있는 것과 산수 교과서에 돈을 연관지은 계산법을 주로 공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교실과 교사의 비품은 수업시간을 알리는 핸드벨, 지시봉(때리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됨), 책상과 의자(보통 뚜껑이 위로 열리는 책상, 의자, 서랍 일체형), 칠판, 천지우개, 분필, 교탁, 사전, 국기(당시는 영국기), 난로, 입구의 여남구분 옷걸이(학생용 라커의 유래), 차트, 지도 등이 있었고 학생 준비물로는 펜맨쉽을 연습할 때는 펜, 잉크, 카피북(빅토리아 시대 펜맨쉽)을 가지고 다녔고 일반적으로 석판, 석필, 천, 교과서, 도시락 등이 필수였고 여학생은 향수병(병의 물을 천이나 스펀지에 묻혀 석판을 닦으면 깨끗하게 지워짐)과 손수건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에이프런(앞치마, Apron 또는 Pinafore)를 필수적으로 입고 다녔고 대체로 신발을 안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캐나다와 영국의 학교 비품에서 다른 것이 있다면 주판(Abacus)인데 영국 학교에서는 산수 시간에 이용되던 기자재인데 비해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당구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석판은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검은색 점판암(슬레이트)에 나무 테두리를 씌운 것이고 석필은 납석(곱돌)을 원통형으로 잘라서 만든 필기구였습니다. 여유가 있는 아이들은 분필(탄산석회)을 쓰기도 했는데 잘 부러져서 보통 선생님만 사용했습니다. 석필은 재질 때문에 조용히 쓰지 않으면 기분 나쁜 소음이 나서 20세기에 이르러 종이와 연필의 가격이 싸지면서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뚜껑이 위로 열리는 일체형 책상과 의자, 빅토리아 시대 에이프런과 주판 (c) Islington Education Library Service objectlessons.org, Shutterstock Images LLC shutterstock.com>


<잉크, 펜, 카피북과 석판, 석필 (c) Islington Education Library Service objectlessons.org>
수업은 보통 오전 9시(영국 빅토리아 시대 보통 등교 시간과 동일)까지 등교해서 주기도문(Lord's Prayer)을 외우고 국가(당시는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를 부른 후에 선생님에게 각자 지도를 받으며 각자의 학년에 맞는 교과서를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 밖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5시 정도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성적표(1905년 경부터 캐나다 공립학교에 도입됨)는 없었지만 연말이나 학년말이 되면 발표회를 통해서 전제적인 수업 능력을 확인했고 진로에 대한 상담으로 학부모에게 할 말이 있으면 교사가 부모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말을 안듣는 학생은 꾸지람을 듣고 구석에 서 있거나, 정해진 의자에 앉아 있거나 바보라고 쓰여진 모자(Dunce's Cap, 특히 영국)를 쓰고 서 있기부터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심한 벌로는 여학생을 남자아이와 함께 앉게 하기(빨강머리 앤), 의자 위에 오랜 시간 서 있게 하기(제인 에어), 매맞기(작은 아씨들, 톰소여의 모험) 등이 있었고 때리는 도구는 막대기부터 심지어 채찍(초원의 집)에까지 이릅니다.

<19세기 우윳병과 도시락통 (c) Wikipedia en.wikipedia.org, 2008 Denise J. flickr.com>
20세기 초부터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지역의 부유한 공장주나 마을 공동 부담으로 우유를 학생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후에 북미도 법제화 하여 지급하기 시작한 것처럼 어린이 발육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원룸 스쿨에서는 집에서 우유를 아이들이 스스로 가져와서 마셨습니다. 빨강머리 앤에 따르면 학교 옆 시냇물에 담가 두는데 자기 자리에 남이 우윳병을 놓으면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점심은 기숙학교는 학교 식당에서 직접 제공했고 집이 가까운 아이들을 제외한 보통 공립학교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공립학교가 빅토리아 시대부터 생겨서 그때부터 도시락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선진국들이 각국의 형편에 맞는 시기에 급식 프로그램(우유급식, 점심급식, 아침급식, 간식급식, 무료급식, 방학급식 등)을 시작한 것과 달리 캐나다는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유급식이나 간식급식과 일부 지역의 아침급식 외에는 그때 그대로 도시락을 싸와서 학교에서 먹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학교 급식에 의한 비만 문제는 덜합니다. 도시락 통은 보통 처음에는 등나무 바구니를 사용했고 19세기 말엽에는 북미의 전형적인 금속 재질 통을 사용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등나무 바구니로 그려졌는데 19세기 일본에서 대나무 바구니 도시락 통이 일반적이서 그렇게 표현되었지만 실제로는 초원의 집 드라마에 나오는 도시락 통이 북미의 전형적인 형태였고 빵, 과일, 계란, 샌드위치, 파이, 쿠키 등을 손수건에 싸서 통에 넣고 다녔습니다. 여자 아이는 그러한 점심을 대체적으로 먹었지만, 남자 아이들은 부유한 아이들 외에는 도시락 통이 거의 없고 그저 신문지에 싸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앤의 도시락과 향수병 (c) 1979 Nippon Animation aogg.egloos.com>
학업 과정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외에 대개의 경우 초등학교만 마치고 직업이 될 일을 배웠고 그에 따라 결혼도 매우 일찍 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11살의 나이로 인쇄소 견습공이 되었는데 후에 미국 문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마크 트웨인의 최종 학력이 옥스퍼드대학교 명예박사(1907)인 것을 생각하면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교육이 그대로 이어진 캐나다의 원룸 스쿨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교육 형태는 아니지만2 유럽의 교육이 캐나다와 미국과 같은 개척시대 환경에서 적용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캐나다는 미국의 영향으로 'Common School', 'Public School' 등은 모두 공립학교(초, 중, 고)를 뜻하고, 영국의 'Public School'은 이튼 등의 명문 사립중등학교를 뜻합니다.
2. 우리나라에는 이미 사설 초등교육 기관인 서당이 고려시대(경관, 서사)부터 존재했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학교 격이자 원룸 스쿨 격이었습니다. 또한, 고구려 시대의 경당도 같은 성격이어서 삼국시대부터 교육에 대해 기본적인 체제가 있었기에 서양의 교육체제와는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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