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초록 지붕집 실제 모델에 대한 고찰 L.M.몽고메리 연구

   빨강머리 앤의 노년 남매 매슈와 마릴라 및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라도 모두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작자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는 항상 부정했지만 앤 셜리, 매슈, 마릴라, 린드 부인의 모델이 되는 실제 인물들의 모든 상황이 소설의 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즉, 작가에 의한 캐릭터 창작의 특성상 애번리 마을의 모든 인물이 자신의 경험과 상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애번리의 배경이 된 캐번디시의 실제 인물과 연결되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외모까지 같은 경우도 많은데 매슈와 마릴라가 대표적이고 그들은 당시 실제로 초록 지붕집에 거주하던 남매인 데이비드 맥닐과 마가렛 맥닐이라는 것이 대체적 의견입니다. 초록 지붕집과 관련된 실제 인물의 삶을 통해 소설에 나타난 공통점을 살펴 보면 소설의 모델임을 극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과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고찰로서 아래 참고 게시물의 심화판입니다.

초록 지붕집(Green Gables House)의 역사와 실제 인물들 : http://aogg.egloos.com/9833149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외가쪽 고조부 존 맥닐(John MacNeill, 1750-1815)과 마가렛 심슨 맥닐(Margaret Simpson MacNeill, 1759-1849)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서 부모와 함께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이주하여 정착한 개척민이었습니다. 존 맥닐은 영국 북부인 스코틀랜드의 서부 아가일 주 켐벨튼(Campbellton, Argyll)에서 태어났고 마가렛 심슨은 스코틀랜드 중북부 모레이셔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1770년대에 섬에 들어와서 개척지 일을 하러 집에 온 유능한 농부 존 맥닐을 만나 1780년에 샬럿타운에서 결혼하고 당시 법률에 의해 숲 뿐이던 미개척지인 캐번디시의 23번 부지를 불하받고 마을 설립자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12남매 중 다섯째인 윌리엄 심슨 맥닐(William Simpson MacNeill, 1781-1870)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증조부가 되었고, 열두째 막내 아들인 데이비드 맥닐(David MacNeill, 1803-1891)은 미국에서 섬으로 이주한 가족의 둘째 딸 메리 도켄도르프(Mary Dockendorff, 1800-1874)와 약혼하고 캐번디시 마을에서는 다소 떨어진 한적한 언덕에 1831년 초록 지붕집을 짓고 1833년에 결혼했습니다.
   초록 지붕집에서는 아기 때 죽은 아이를 빼고 5남매가 태어났습니다. 나이 순서대로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 1829-Unknown), 마가렛 맥닐(Margaret McNeill, 1831-1924), 데이비드 맥닐(David McNeill Jr.,1833-1910s), 거스터버스 맥닐(Gustavus McNeill, 1835-Unknown), 어니스트 맥닐(Ernest McNeill, 1837-Unknown)입니다. 모든 자녀가 결혼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장남 윌리엄 맥닐만이 결혼을 했습니다. 윌리엄 맥닐은 샬럿타운 근처에서 농장을 일구던 장인 존 리차드 맥키(John Richard MacKie)의 외동딸 마가렛 헬렌 맥키(Margaret Hellen Mackie)와 결혼하여 9남매를 두고 초록 지붕집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차남인 데이비드 맥닐이 초록 지붕집을 1877년부터 상속하여 경영했습니다. 나머지 형제는 본토로 떠나버리고 초록 지붕집의 두 남매는 데이비드 맥닐이 60세에 이를 때까지 마가렛은 안주인으로 별 탈 없이 집안 살림을 했고 데이비드는 농장일을 하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두 남매의 사진을 보면 소설에 묘사된 외모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와 마가렛 맥닐 남매 실제 사진, 애니메이션의 매슈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 (c) 2010 Formac Publishing Company, 1979 Nippon Animation aogg.egloos.com>

   데이비드 맥닐이 60세에 이른 즈음 1894년에 형 윌리엄의 장녀인 조카딸 메리 에이다 맥닐(Mary Ada Macneill, 1863-1947)이 본토 뉴브런즈윅 해브록에서 근본을 잘 알 수 없는 11살짜리 딸 머틀 맥닐(Myrtle Macneill, 1883-1969)을 데리고 초록 지붕집에 오게 됩니다. 그 즈음 마가렛은 점점 눈이 멀게 되어서 후로는 빛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머틀의 어머니 메리는 초록 지붕집에서 살다가 머틀이 꽤 자라자 1899년 아내를 잃고 아이 둘을 키우던 홀아비 월터 심슨(Walter Simpson, 1847-1919)과 1901년 결혼하여 캐번디시에서 가까운 마을 베이뷰로 떠났습니다. 머틀 맥닐은 아주머니과 아저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서 오리리 출신의 청년 어니스트 웹(Ernest Webb, 1880-1950)과 1905년 9월 20일 오전 11시에 초록 지붕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07년까지 오리리의 본가에 가서 신혼생활을 했습니다. 1907년 늙은 아주머니 아저씨를 부양하고 초록 지붕집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초록 지붕집으로 다시 옮겨왔고 데이비드 아저씨가 1910년대(공식 기록 없음)에 사망한 후 초록 지붕집을 상속했습니다. 모드 여사는 결혼식 당시 청첩장을 자신의 스크랩북에 보관했고 봉투 면에는 (추정) 아래쪽에 앤의 웨딩이라는 글자를 첨가했습니다. 역시 후에 앤 시리즈에서 앤의 결혼식 장면에 참고되었습니다.


<레드 스크랩북 45페이지의 머틀 맥닐과 어니스트 웹 결혼 청첩장 내용과 청첩장 봉투 부분 확대 - 모드 여사 이름 아래 부분은 후에 자신이 직접 "앤의 웨딩"이라고 부기한 것으로 추정 (c) 1905 Lucy Maud Montgomery lmm.confederationcentre.com>

   머틀 웹과 어니스트 웹 부부는 소설에서처럼 앤 셜리가 길버트와 결혼하고 6명(총 7명)의 아이를 두었듯이 소설에 나오는 것과 성비는 다르지만 똑같이 아기 한 명을 잃고 총 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아이나 웹(Ina Webb, 1906-1906), 매리언 웹(Marion Craire Webb, 1907-Unknown), 키스 웹(Keith F. Webb, 1909-Unknown), 아니타 모드 웹(Anita Maud Webb, 1911-Unknown), 앨리슨 로레인 웹(Allison Lorraine Webb, 1917-Unknown), 폴린 웹(Pauline Webb, 1920-Unknown)입니다.

 
<1895년의 초록 지붕집과 웹 가족 전체와 모드 여사 두 아들 단체 사진 (c) 1895, 1920 Lucy Maud Montgomery - University of Guelph Library lmmrc.ca>

   머틀 웹은 캐번디시 침례교회에 50년간 오르간 반주를 한 교회의 중요 인물이었고 자신의 집인 초록 지붕집이 유명한 소설의 배경이 되었기에 캐번디시의 사교적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초록 지붕집은 캐나다 행정부가 1937년 4월 24일부터 북해안 일대와 함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국립공원(Prince Edward Island National Park)으로 지정했고 1985년부터는 국가 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 of Canada)가 되어서 머틀 웹과 어니스트 웹 부부는 1936년에 6천 달러를 받고 초록 지붕집을 국립공원에 양도하고 온타리오에 저택을 구입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성장하여 본토로 떠나갔는데 웹 부부는 초록 지붕집 관리인으로 살면서 초록 지붕집을 지키다가 1946년 은퇴하고 초록 지붕집을 떠났습니다. 이후론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드 여사는 웹 부부와 그 자녀들과 어려서부터 특별히 교류했기에 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장녀인 매리언 웹은 모드 여사가 노발에 살 때 방문했다가 머레이 레어드(Murray Laird)를 만나서 1934년 결혼하여 노발에 정착했고, 유일한 남자인 키스(웹 부부의 작명에 의해 애번리의 앤의 키스 쌍둥이 이름과 동일함)는 노발 출신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모드 여사 이름을 딴 아니타 모드(앤 시리즈의 앤의 딸 낸과 같은 이름으로 불림)는 결혼하지 않고 모드 여사 집에 가정부로 일하면서 요리를 배워 토론토로 이주하여 직업 조리사가 되었고, 로레인은 해롤드 베시(Harold Vessey)와 1944년 결혼하고 낳은 자신의 두 딸의 이름으로 모드 여사 작품의 등장 인물의 이름을 썼고, 막내딸 폴린은 자신이 릴러라고 굳게 믿으며 소설에서처럼 유일하게 섬사람을 만나 1943년 샬럿타운에서 결혼하고 4남매를 낳았습니다. 이런 웹 가족과의 우정으로 인해 모드 여사는 1935년 출판된 실버부시의 패트의 속편 팻 아가씨(Mistress Pat)를 웹 부부와 가족에게 헌정했습니다.

   "To Mr. and Mrs. Ernest Webb and Their Family" <Mistress Pat, 1935>

   이렇듯 모든 실제 인물의 삶이 앤 시리즈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 작품 곳곳에 투영되어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성격상 모델은 보통 모드 여사 자신의 친척이고 이야기와 상상의 창작에 의한 캐릭터의 성격은 모두 모드 여사 자신이었지만 여러 많은 캐릭터가 성격이나 외모에서 실제 인물과 다르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모드 여사도 그것에 대해 언급했고 객관적인 의견들로서 초록 지붕집의 실제 인물들이 캐릭터의 실제 모델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초록 지붕집에서 태어났던 장녀 매리언의 증언을 보면 매슈와 마릴라의 외모 외 성격 또한 실제 인물인 데이비드 맥닐과 마가렛 맥닐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I looked after Aunt Magaret - she was blind. She went around the house with her hands out in front of her. She was very sarcastic, and Uncle David was just the opposite. He was so gentle, so kind. Spoiled us children. Thought nothing was too good for us. Aunt Magaret was just the opposite [wag her finger] - You shouldn't let them do that!"
   "난 마가렛 아주머니를 - 눈이 멀었기에 보살폈어요. 아주머니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집안을 돌아다녔죠. 그녀는 매우 완고했고 데이비드 아저씨는 완전히 반대였어요. 아저씨는 어린 우리들이 응석받이가 될 정도로 무척 자상하고 친절했어요.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죠. 마가렛 아주머니는 손가락을 흔들며 - '데이비드, 걔들이 그렇게 하도록 두면 안된다!'라면서 반대했어요."
매리언 웹 <Remembering Lucy Maud Montgomery, Alexandra Heilbron, Dundurn, 2001>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이상의 내용과 별 다른 것이 없는데 다만, 매슈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 중 누가 더 나이가 많느냐에 대해 로맨티스트가 세계 최초로 의문을 제기합니다.

   "매슈는 마릴라의 오라버니가 아니라 남동생입니다."

   모드 여사가 창작시 데이비드와 마가렛 맥닐의 나이를 혼동했을리 없고 빨강머리 앤 영어 원서를 영문학이나 심리분석의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구문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완전히 반대로 마릴라가 매슈보다 2~5살 정도 더 나이가 많습니다. 실질적 증거도 같은 맥락인데 마가렛 맥닐이 1831년생이고 데이비드 맥닐이 1833년생이라는 족보 데이터 외에 1880년 공식 발행된 지도의 토지대장(llustrated Historical Atlas of the Province of Prince Edward Island, J. H. Meacham and Company)에는 데이비드 맥닐이 1836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창작에 의해 매슈는 심장마비로 일찍 죽는 것으로 나오는데 반면 마릴라는 앤이 결혼한 후에도 오랜 세월 살아 있는 상황은 실제 모델인 마가렛 맥닐이 93세까지 살았기에 기인됩니다.
   보통 언어권에 관계 없이 매슈가 더 나이 많은 오빠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에서의 상황이나 문맥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 그렇게 통용되어도 족합니다. 그러나 연구적 입장의 독서에서는 매슈가 남동생인 경우 마릴라가 하는 말들이 더 강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말은 세계에서도 유래 없을 정도로 경어가 발달된 언어이므로 마릴라가 더 나이 많은 누나라는 것을 고려하게 되면 소설 전체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번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 구문과 같습니다.

   "Well now, she's a real nice little thing, Marilla. It's kind of a pity to send her back when she's so set on staying here."
   "Matthew Cuthbert, you don't mean to say you think we ought to keep her!"
   "글쎄요. 저 아이는 정말 마음씨 곱고 귀여운 아이인데요. 누님. 저렇듯 우리집에 있고 싶어하는데 되돌려보낸다는 게 어쩐지 가엽네요."
   "매슈 커스버트, 설마 저 애를 우리가 맡자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빨강머리앤 3장, 번역 로맨티스트>

   이로서 매슈 커스버트는 아무리 가장이라 하더라도 마릴라가 누나이므로 직접 앤을 데리고 있자고 말하지 못하고 침묵 시위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마릴라가 결벽증이 있듯이 마가렛도 그러했다는 것은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메리 로슨을 비롯한 당시 초록 지붕집을 잘 알고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언급한대로 땅에 떨어진 음식을 그대로 주워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했고 부엌이 너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사용하지 않는 곳 같았다는 증언은 모드 여사 자신도 그렇게 느꼈을 터이므로 그것 역시 소설에 그대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실제 인물로서 살펴보는 캐릭터는 작품을 더 이해하기 쉽게 하고 빨강머리 앤의 모든 내용이 그러하듯 어떤 편견을 깨뜨리는 것 같습니다.

* Special Thanks : Alastair McIntyre, Harold H. Simpson
* 위의 내용 중의 실제 인물은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 있고 후손의 개인정보이므로 더 자세한 정보는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진은 기재된 카피라이트의 저작권자에게 권리가 있으므로 미디어, 출판 등의 상업적 용도에 사용할 경우 각기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글루스 가든 - 빨강머리 앤과 함께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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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 감상 - 어버이의 날 스페셜 비디오 음악 스크랩

   앤 셜리가 시낭송 하는 것 같은 분위기의 어버이의 날(어머니의 날) 비디오입니다. 영시로 어버이의 은혜를 생각해 보는 비디오가 될 겁니다. 로맨티스트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음악도 만들고 비디오도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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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빨강머리 앤을 중심으로 7 빨강머리앤 연구

   지리상의 발견이 본격화 되는 15세기 후반 이후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살고 있는 다른 인종들의 문화, 사회, 정치, 군사, 경제적 이용을 위해 유럽인에 의해 인종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고대로부터 유럽에는 다양성의 근간이 되는 부족과 도시 국가가 흔히 존재했고 소수의 다른 인종 사람들이 유럽에 존재해서 근세에까지는 인종주의가 대두되지 않았지만, 근대에는 다수의 다른 인종과 조우하게 되고 그들을 지배할 필요성이 생겼으므로 마녀사냥의 원리를 그대로 이어서 다른 인종은 미개인, 이교도, 인간이 아닌 동물 등으로 간주하여 학살과 수탈을 자행합니다. 마녀사냥이 이교도의 처단에서 시작하여 후에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듯이 마녀사냥이 끝날 즈음부터 시작한 인종주의는 처음에는 탐험, 선교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후에는 유럽인 외 다른 인종을 마녀사냥과 똑같은 방법으로서 저항하는 사람은 무조건 죽이고 유럽인의 경제적 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마녀사냥의 경우에도 르네상스 지성인이라는 종교인, 정치가, 과학자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고 그들이 앞장서서 이단 퇴치, 사회 안정이라는 그럴듯한 미명(美名)으로 실행되었던 것처럼 인종주의도 똑같이 종교, 과학이 이론을 정립하고 탐험, 개발, 선교라는 그럴듯한 미명으로 실행됩니다.
   빨간 머리는 인종의 분류에 전적으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종주의와 빈번히 연결되는 것은 마녀사냥에 의해 고착화된 유럽인의 내부적인 속성이 같은 논리에 의해 인종주의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유럽 인종 외 다른 인종에서는 빨간 머리는 매우 드문 신체적 특징이라서 빨간 머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그러나 속성의 측면에서 같은 원리이기 때문에 매우 유사하게 역사 사실 및 문화로서 나타납니다. 마녀사냥 시대 이후 인종주의가 유럽인 외 타 인종에게 나타나기 전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유대인과 집시인데 근세에는 죽일만한 다른 인종이 매우 많아서 최소한의 박해를 받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식민지 시대가 끝무렵이 되고 다른 인종을 죽일만큼 죽인 후인 20세기 초중반에 역시 필요에 의해 유대인과 집시의 대량학살인 홀로코스트가 나타나고 20세기 중후반에는 극단적 인종주의로 나타납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부터 그것을 이은 문화주의가 크게 대두되는데 인종주의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전의 인종주의가 발로이고 교육에 의한 개개인의 사회화 과정 중에서 문화주의가 나타므로 역시 종교, 정치, 사회, 경제와 매우 큰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다문화주의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인종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 대량학살이고, 그다음으로는 근현대의 흑인 노예제도와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대량학살, 20세기 말 르완다와 보스니아의 인종말살, 20세기 후반까지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 20세기 중반까지의 호주의 백호주의 등이 있습니다.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하는 대량학살에 의한 희생자수는 마녀사냥 시대의 수십만 단위에서부터 백만명 이상 천만명 단위이기 때문에 현대의 인종주의는 이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악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인종주의는 문화주의로 이어져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며 우리 사회도 21세기 초부터 당면한 문제입니다. 그 인종주의를 빨간 머리에 비유한다면 아래 뮤직비디오에 잘 나타납니다. 어린이와 임산부, 심약자는 플레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M.I.A - Born Free 뮤직비디오 (스리랑카 타밀족 학살을 모티브로 한 빨간 머리 사냥) : http://vimeo.com/11219730

   마녀사냥에서 빨간 머리만 특별하게 취급된 사례는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마녀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는 사람의 경우에 인종주의적인 편견이 매우 크게 작용하여 당시 인종적으로는 부랑자 집단인 집시, 유대교를 고수하는 유대인과 사회적으로는 과부, 미혼모, 동성애자, 미혼여성들이 주된 대상이었습니다. 고대로부터 살펴본 실제 인물에 의하면 빨간 머리는 자립심과 창의성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는 대조되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마녀로 지목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약자가 마녀사냥을 통해 희생되는 것이 이어져 현재에도 인종주의와 연결되어 다수와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소수의 사람들이 탄압을 받는 실례로 나타납니다.
   아시아에서는 인종이 유럽만큼 다양하지 못하여 인종주의적 편견은 덜 하지만 유럽에서 근대 이후 현대에 발달하게 되는 민족주의, 이념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등에서 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측면에서 유럽의 것과 상응하는 제노사이드가 있어 왔습니다. 그러한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은 중일전쟁 중의 난징 대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중국 공산당의 숙청 등이 있으며, 희생자수는 적지만 우리나라에는 북한 공산당의 숙청, 제주 4·3사태와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의 학살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제노사이드 역시 수십만 이상 수백만 단위의 희생자수이기에 유럽의 것에 못지 않으며 보스니아 내전의 경우처럼 같은 인종과 같은 국가 내에서 더 세분화된 민족, 이념, 종교에 의해 벌어진 학살이기에 더 극악한 것일 수 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형태의 것입니다.
   바로 전 게시물의 실제 인물이었던 빨간 머리, 앤 불린의 경우에 마녀사냥의 전형적인 개념과 과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521년 헨리 8세의 정부 메리 불린의 동생으로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가 됨
1526년 헨리 8세가 정부로 삼으려 하자 완강히 거부하고 정식 결혼을 요구함
1533년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의 이혼 후 정식 결혼으로 잉글랜드 여왕이 되고 딸 엘리자베스를 출산함
1536년 1월 29일 헨리 8세의 낙마로 인한 부상 소식에 절망하여 남자 태아 유산, 시녀 제인 시모어가 헨리 8세를 매혹함
1536년 5월 2일 헨리 8세의 각본에 의해 마녀 및 근친상간, 간통,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수감됨
1536년 5월 11일 간통에 연루된 남성들은 고문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앤 불린 반대파 증인과 배심원에 의해 혐의 유죄로 판결
1536년 5월 15일 켄트 법정에서 모든 혐의 유죄 판결로 마녀와 같은 양형인 화형 확정
1536년 5월 17일 오빠 조지 및 유죄 남성 처형, 앤 불린은 왕의 자비로운 선처로 참수형으로 감형
1536년 5월 19일 앤 불린 참수
1536년 5월 30일 헨리 8세 제인 시무어와 결혼

   앤 불린은 그렇게 죽어갔지만 그녀의 딸인 빨간 머리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어머니의 불행을 기억하고 평생 처녀로 살면서 당당히 대영제국의 기초를 세우게 됩니다.

   위의 인종주의와 마녀사냥에서 기인되는 본질을 간단히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법률적으로 : 억지로 법에 끼워 맞추어 체포한다. → 증거가 없으므로 자백 등의 증거를 고문 등을 통해 만들어 낸다. → 최소 사회적 제거에서부터 사형에 이르기까지 적법한 것으로 포장하여 집행한다.

전쟁으로 : 다른 종교, 인종, 민족, 성별, 이념, 사회, 심리적 차이가 있는 자는 적으로 규정한다. →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고 그들은 인간이 아니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많이 죽인다.

사회적으로 : 같은 종교, 사회, 문화, 인종, 민족, 이념 내에서라도 부적응자 및 반대론자나 진보된 소수 의견자는 현재 사회와 문화에 성격상 완전히 다른 개체로 규정한다. → 최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 사회, 문화, 이념적으로 다른 자들 또는 적이라고 과장하여 호응을 이끌어 낸다. → 사회, 종교, 법률적인 여러 수단을 동원해 최소한 심리적 압박에서부터 사회적 탄압과 함께 법률로서 최대한 탄압한다.

   반면, 비교되는 머리색으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검은 머리는 다른 인종에게도 매우 흔한 것이지만, 순수 유럽 인종에게 검은 머리는 빨간 머리보다 더 드문 머리색입니다. 모든 유럽 인종에게 갈색 머리는 매우 흔한 반면에 더 어두운 색인 검은 머리는 매우 드문 유전자의 발현으로 여겨집니다. 현대에는 역사의 변천에 의한 인류의 이동에 따라 스페인과 신대륙 남미의 인종에게는 매우 흔하고 순수 유럽인종 지역이었던 프랑스에도 다수가 있지만 중세 이전의 유럽에는 거의 없는 머리색이었습니다. 그 드문 검은 머리 유전자는 고대로부터 북 아프리카 지역의 인종(무어인, 집시 등)과 서유럽인의 결혼에 의한 후손(실제 인물: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 중세시대 8세기 초부터 13세기 말까지 이슬람계의 스페인 점령에 의한 후손에 의해 서유럽에 존재하여 현재 순수 유럽 인종에게도 스페인계가 아니라도 프랑스 및 독일, 북유럽 등지에서 소수에게 나타납니다. 중세 이후 유럽 문화에 의하면 검은 머리처럼 뚜렷이 검지도 않고 금발처럼 매우 밝지도 않은 머리색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은 금발 또는 흑발을 매우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금발의 경우는 현대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검은 머리는 현대 인종에게는 매우 흔하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순수 유럽인과 신대륙 유럽 인종은 현재에도 검은 머리를 아름답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실례는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와 <빨강머리 앤>에서 앤 셜리의 가장 중요한 친구 캐릭터인 다이애나에게 검은 머리가 부여된 것 등이 있으며 빨강머리 앤의 저자는 캐나다에 정착한 유럽인의 후손이었므로 그 선호 사상이 소설에 그대로 나옵니다.

   "I think to myself, 'Now my hair is a glorious black, black as the raven's wing.' But all the time I KNOW it is just plain red and it breaks my heart. It will be my lifelong sorrow.
   전 혼자 생각해요. '이제 내 머리는 빛나는 까만색이다, 까마귀 날개처럼 까맣다.' 하지만 그저 빨간색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으니 가슴이 아파요. 아마 제 평생의 슬픔이 될 거에요. " <빨강머리 앤 2장>

   "Nonsense," said Diana, whose black eyes and glossy tresses had played such havoc with the hearts of Avonlea schoolboys that her name figured on the porch walls in half a dozen take-notices.
   "말도 안돼." 까만 눈과 윤기 나는 탐스런 (검은) 머리로 애번리 남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서 현관 벽에 한 타스의 반 번이나 주목이라고 이름이 적혔던 다이애나가 말했다. <빨강머리 앤 15장>

   우리나라 사람이 검은 머리를 염색하여 밝은색으로 만드는 것이나 서클 렌즈로 눈동자색을 밝게 하는 것은 순수 유럽 인종에게는 매우 이상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그것에서 기인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빨간 머리는 인종주의와 관련이 없으면서도 성격상 항상 관련되어집니다. 그래서 빨강머리 앤에서는 검은 머리를 놀리는 것과 빨간 머리를 놀리는 것은 다르다는 구절로 인종주의에 대한 그것이 일부 나타나고 있습니다.

    "You mustn't mind Gilbert making fun of your hair," she said soothingly. "Why, he makes fun of all the girls. He laughs at mine because it's so black. He's called me a crow a dozen times; and I never heard him apologize for anything before, either." "There's a great deal of difference between being called a crow and being called carrots," said Anne with dignity. "Gilbert Blythe has hurt my feelings EXCRUCIATINGLY, Diana."
   "길버트가 네 머리털을 놀려댔다고 너무 화내지 마, 그 아이는 어느 여자아이건 놀려댄단 말이야. 내 머리털이 새까맣다고 얼마나 웃었다구. 나더러 까마귀라고 몇 번이나 놀렸단다. 게다가 그 아이가 무슨 일에든 사과하는 것은 본 적이 없어." 앤은 다시 딱잘라 말했다. "까마귀라고 놀리는 것과 당근이라고 놀리는 것은 전혀 달라. 길버트 블라이스는 고문 당하는 것만큼 내 마음을 상하게 했어, 다이애너." <빨강머리앤 15장, 김유경 번역>

   다음 게시물에는 빨강머리 앤에 나타난 부정적인 인종주의에 대해 더 알아보고 근현대 실제 인물들의 고찰이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빨강머리 앤과 함께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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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빨강머리 앤을 중심으로 6 빨강머리앤 연구

   이제 15세기 말부터 본격적인 빨간 머리 수난 시대가 시작됩니다.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의 시작인 마녀사냥은 14세기에 구교에 의해 초기엔 이단 퇴치의 형식으로 시작되어 16~17세기의 극대기에 전 유럽에서 여성 박해의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초기의 유명한 사건으로는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한 날이라는 유래가 된 1307년 10월 13일 프랑스 왕 필립 4세가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해체시키고 몰살 시킨 사건이 있고, 마녀로는 1431년 잔다르크의 화형이 있습니다. 이후에 점점 여성의 비율이 높아져 남성과 비교하여 약 80% 가량의 여성이 마녀로 지목되어 희생되었습니다. 마녀로 판결을 받게 되면 양형은 오직 하나로 산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이었습니다.

 
<템플기사단의 화형 일러스트, 헤르만 스틸케 작 잔다르크의 죽음 (c) 1384 unknown artist en.wikipedia.org, 1843 Hermann Stilke arthermitage.org>

   또한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로부터 루터교가 시작되고, 1534년에는 영국 헨리 8세의 수장령에 의해 시작된 성공회, 스위스의 츠빙글리에 이어 존 칼빈(장 칼뱅)이 일으킨 칼뱅주의에 의해 전 유럽이 종교개혁을 겪게 되며 많은 개신교 종파가 시작됩니다. 각 교단에서는 소수층 탄압의 수단으로 반대자를 이단으로 고발하여 처단했고 국가 내에서는 종교반란이 수시로 일어나며 국가 간에는 종교전쟁이 끊임 없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힘 없는 여성들이 사회, 정치, 문화, 젠더적 희생양이 되어 마녀사냥이 본격화 되는 것이고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극대화 되어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사회 약자들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대유행했던 흑사병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에 대표가 되는 빨간 머리가 많은 지역인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성공회와 가톨릭의 대립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칼뱅주의에 영향을 받은 존 녹스의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위시한 청교도가 생기게 되고 많은 박해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마녀사냥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신대륙으로 건너 간 청교도 사이에서도 마녀사냥이 있었으니 빨간 머리에 대한 편견의 출처는 종교의 대립에 의한 정치 역사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당시에도 그것에 대항하는 실제 인물들이 있습니다. 전 게시물에 나열된 위대한 성취와 관련된 인물들처럼 근세에도 면면히 이어집니다. 정말 그러한지 정치 문화 인물로 살펴보겠습니다.

 
<빨간 머리 여성이 다수 표현된 1692년 메사추세츠 세일럼 마녀재판 회화, 빨간색이 모티브가 된 소설 주홍글씨 도서 커버 (c) 1855 T. H. Matteson en.wikipedia.org, 2005 Barnes & Noble amazon.com>

   또한,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와 그 분가 및 튜더왕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주요 레퍼토리로 삼은만큼 그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영미문학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콘텐츠가 재상산 되고 있습니다. 그시대 인물들 대부분은 역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므로 그에 영향을 받은 빨강머리 앤에 소재로 나옵니다. 즉, 빨간 머리가 가지는 상징과 그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들이 연결됩니다.

   역사 인물

   5. 근세

ㄴ. 정치 문화

   빨간 머리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485~1536)과 이혼하기 위해 국교를 만들고 총 여섯번 결혼한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는 어려서 빨간 머리였습니다. 자라서는 적갈색 머리로 바뀌었고 왕이 된 후에는 빨간 머리가 싫었던지 자신의 초상화를 의도적으로 갈색머리로 그리게 했습니다. 그의 두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 1507~1536)은 보통은 초상화에 의해 짙은 갈색머리로 알려졌지만 역시 적갈색의 빨간 머리였고 헨리 8세에 의해 간통 혐의로 참수되었습니다. 세번째 왕비 제인 시무어도 빨간 머리로서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했는지 산욕열로 죽었습니다. 네번째 왕비 클레브스의 앤(Anne of Cleves)은 머리색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헨리 8세의 취향으로 보아 빨간 머리일 확률이 매우 높지만 그런 이유인지 이혼만 당하고 목은 무사했습니다. 다섯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1520년경~1542년)는 앤 볼린의 외사촌으로 적갈색 머리이며 앤 볼린과 똑같이 간통 혐의로 참수되었습니다. 여섯번째 왕비 캐서린 파도 빨간 머리였지만 헨리 8세가 죽어서 화를 면했습니다. 헨리 8세가 그토록 많은 왕비를 죽이거나 쫒아낸 것은 아들을 못낳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선시대와 일맥상통합니다.

  
<아라곤의 캐서린, 헨리 8세, 앤 불린 초상화 (c) Hans Holbein the Younger images.google.com>

  
<클레브스의 앤(현대 일러스트),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파 초상화 (c) homepages.wmich.edu/~v5bowman, Hans Holbein the Younger images.google.com>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의 딸 영국 여왕 메리 1세(Mary I of England, 1516~1558)도 빨간 머리입니다. 신교도를 무자비하게 죽여서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블러디 메리(피투성이 메리, Bloody Mary)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러디 메리는 악명 높은 어떤 것에 대한 상징으로서 현대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블러디(Bloody)라는 단어가 영국 영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욕설(동정녀 마리아와 관계된 욕설로 1980년대 이후부터 강도가 약해져 현재는 어린이도 사용)이 된 것도 그 인물에 의해서입니다.
   제임스 5세의 딸, 빨간 머리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메리 스튜어트, Mary, Queen of Scots, 1542~1587)는 생후 9개월부터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프랑스왕 프랑수아 2세와 결혼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567년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잉글랜드로 망명하고 18년간의 유배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1587년 참수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남편이 모두 죽는 불행 때문에 빨강머리 앤에서 나온 소재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항상 비운의 인물로 그려집니다.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Virgin Queen, 1533~1603)는 처녀 여왕으로 44년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였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며 제국의 기초를 다지면서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게 됩니다. 역시 빨간 머리로 유명하고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 주의 이름이 되었고 사람 이름으로도 쓰이게 되는데 빨간 머리이기 때문에 애칭으로 진저(Ginger)를 사용하게 되는 어원이 되는 실제 인물입니다. 여성이면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여왕이라서 현대에도 많은 콘텐츠가 재생산 되고 있지만 진저는 구시대에는 부정적인 이름이 아니었으나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부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도 국교를 정립하면서 마녀사냥에 일조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리터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c) 1558 François Clouet publicdomainclip-art.blogspot.com, 1546 William Scrots englishhistory.net>

Ω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영문학에서의 위치는 그의 이름 이전과 이후를 따지는 것처럼 영문학의 시작점입니다. 앤의 머리색이 어려서는 빨간색이었다가 자라서 적갈색이 되는 상황은 빨강머리 앤 소설도 영문학의 작품이므로 그 선상에서 셰익스피어가 그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셰익스피어라는 실제 인물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적기 때문에 현대에 많은 논란과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나쁜 인물은 대체로 모두 빨간 머리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어 빨간 머리만이 빨간 머리를 놀릴 수 있는 것을 실행한 두번째 위대한 인물로 생각됩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 작품에 수시로 투영되기 때문에 그 텍스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번리(Avonlea)라는 지명은 그의 고향인 스트래트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과 셰익스피어의 필명(Bard of Avon, Swan of Avon)의 유래가 된 에이번(Avon)에 문학적 시어인 초원이라는 뜻을 가진 리(lea)를 붙이면 만들어집니다. 실제 인물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그의 사극 희곡으로 유명한 헨리 4세(Henry IV of England, 1366~1413)의 이름이 헨리 볼링브로크(Henry Bolingbroke)인데 앤의 고향 노바스코샤 주의 볼링브로크(Bolingbroke)의 유래가 됨이 추측되고 헨리 4세 역시 실제 빨간 머리였습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곡의 뚜렷한 특징인 도시를 떠나 숲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 것과 낭만적인 모험과 로맨스, 해피엔딩, 쌍둥이가 등장인물로 자주 나오는 것 등의 모든 상황이 빨강머리 앤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쌍둥이에 대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아이들 중에 쌍둥이 남매로 쥬디스(Judith)와 햄닛(Hamnet)이 있었고 햄닛은 어려서 죽어서 셰익스피어가 그를 기리며 햄릿의 이름으로 썼습니다. 앤을 입양하는 가족이 왜 하필 노년의 남매냐라는 모티브에 약간의 증거입니다. 햄릿에는 미쳐서 죽는 오필리어가 나오는데 화관을 버드나무에 걸려다가 물에 빠져 둥둥 떠있다가 익사하여 죽게 되는 상황은 역시 빨강머리 앤의 중요 소재인 화관과 앤 시리즈 중 하나의 제목이 되었고 둥둥 떠있는 장면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백합공주 에피소드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리어왕에서는 효녀이고 슬프게 죽는 인물인 코델리아라는 공주가 나오는데 앤 셜리가 항상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는 적금발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는 빨강머리 앤 내용에 직접 인용했고 줄리엣은 매우 빈번히 빨간 머리로 그려집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고리(인육)대금업자 샤일록은 빨간 머리 유태인으로 대표적인 빨간 머리 악역 캐릭터입니다.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던 당시의 유태인 혐오는 빨강머리 앤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내용상 부정적인 인종주의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거나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쓰여졌으므로 현재에 부정적으로 보일 뿐 그 당시에는 적합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역사 희곡을 쓸 때 역사 관련 사실을 참고한 라파엘 홀린셰드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대기(Chronicles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Raphael Holinshed, 1577)의 제목은 모드 여사의 빨강머리 앤 시리즈의 번외 작품들의 제목인 애번리 이야기(Chronicles of Avonlea, L. M. Montgomery, 1912)와 그 속편에 영향을 끼쳤고 더 후에는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C. S. Lewis, 1950-6)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간접적인 것까지 합한다면 다른 영문학 작품들처럼 모든 시작이 셰익스피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문예부흥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영문학의 위대한 인물이며 빨강머리 앤 연구자의 기초적 출발점이 되는 빨간 머리 인물입니다. 아마도 당시의 셰익스피어는 영어의 미래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예로 아래 텍스트만큼 웹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일찍 쓰여진 예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로맨스 소설의 제목이 됩니다.

   The webbe* of our life, is of a mingled yarne, good and ill together: < All's Well That Ends Well, William Shakespeare, 1623> *webbeearly middle English=web, weaver
   우리 인생의 거미줄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얽혀 짜여지는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1623년 출판, 끝이 좋으면 다 좋아 4막 3장 중에서>

루시 모드 몽고메리 1931년 작품 제목 : 엉클어진 거미줄(사랑의 유산, A Tangled Web, L. M. Montgomery, 1931)

킴벌리 S. 영 박사의 인터넷 중독에 대한 책 제목 : 엉망진창의 인터넷(Tangled in the Web, Kimberly S. Young, 2001)

   왕이 아니면서 영국사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도 빨간 머리였습니다. 청교도 혁명과 유럽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찰스 1세 왕을 처형하고 영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을 만들어 호국경으로 철권통치를 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년)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과학 연구의 업적 때문에 교회와의 대립으로 종교재판을 받고 지동설 철회를 강요 받았지만 빨간 머리 휘날리며 당당하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빨간 머리는 아니지만 동시대의 천문학자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재판을 받았던 것이 유명합니다.
   스코틀랜드 고원의 무법자로 스코틀랜드의 로빈 후드라고 불린 로브 로이(Rob Roy MacGregor, 1671~1734)도 빨간 머리였습니다. 로이라는 단어가 스코틀랜드 겔어로 빨간색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에는 스코틀랜드가 원산인 스카치 위스키를 베이스로 쓴 칵테일 이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음악 분야에도 위대한 빨간 머리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1)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가 빨간 머리 휘날리며 콩나물을 잘 다루어서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알비노니는 실제로 작곡했는지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는 명곡으로 유명하고, 비발디는 사계, 협주곡, 오페라, 칸타타 등으로 유명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붉은색은 매우 긍정적인 중후, 온화의 의미로 악기의 모든 색깔 그 자체입니다.

   
<올리버 크롬웰, 갈릴레오 갈릴레이 초상화, 영화 로브 로이 장면, 비발디 CG 일러스트 (c) 1600s Samuel Cooper, 1624 Ottavio Leoni en.wikipedia.org, 1995 AP photo, 2012 Alexander Street Press alexanderstreet.typepad.com>

   다음 게시물에는 빨간 머리와 관련된 근세의 마녀사냥의 본질과 인종주의에 대해 더 알아보고 근대의 실제 빨간 머리 인물이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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